천주교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단어가 성물입니다. 미사에 참례하다 보면 사제와 복사가 들고 있는 성배와 성반, 신자들이 손에 쥐고 기도하는 묵주, 성당 곳곳에 모셔진 성모상과 십자고상까지 종교 의식에 쓰는 거룩한 물건을 두루 일컫는 말이거든요. 영세를 받기 전후로 가장 많이 챙기게 되는 시기여서, 이 시점에 성물을 어디서 어떻게 골라야 할지 막막해하시는 예비신자분들이 많습니다. 한국 가톨릭에는 성물을 종합적으로 갖춰놓은 전문 매장이 여러 곳 있어서 이를 흔히 성물백화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어떤 곳은 그냥 성물방이나 성물나라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 번 방문하시면 신앙의 보조 도구가 이렇게 다양하구나 하고 새삼 놀라게 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성물의 종류를 우선 정리해 보면 가장 기본은 묵주와 십자가, 십자고상, 성모상입니다. 묵주는 라틴어로 장미 화관을 뜻하는 로사리우스에서 온 단어로 구슬이나 나무 알을 열 개씩 다섯 마디로 엮어 끝에 십자가를 단 환 모양의 기도 도구이고요, 묵주기도라는 가톨릭 전통 기도법에 사용됩니다. 십자고상은 십자가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얹혀 있는 형태로 가톨릭에서는 빈 십자가가 아닌 십자고상을 더 정통으로 봅니다. 성모상과 성가정상, 미사보, 수단, 제구류, 성수 그릇, 향로, 미사 보조도구, 성가책, 묵주 케이스, 차량용 성물 액세서리까지 카테고리가 굉장히 다양하게 펼쳐져 있어서 한 매장 안을 천천히 둘러보면 한 시간이 훌쩍 갑니다.
한국 주요 성물 매장은 대부분 명동성당 인근, 혜화동, 약현, 그리고 각 교구청 부근에 자리하고 있고요, 온라인에서는 성물나라, 요셉성물, 성물방, 바오로딸, 은혜성물 같은 곳이 종합 쇼핑몰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격대는 묵주 기준으로 나무 알 보급형이 1만 원 안팎부터 시작해서, 자수정이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같은 보석류가 들어간 제품은 10만 원에서 30만 원대까지 분포해 있고, 성모상은 작은 탁상용이 5만 원 안팎부터 1미터 가까운 입상은 100만 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사보는 레이스 종류와 길이에 따라 3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가 흔합니다. 매장 자체를 직접 방문하시면 묵주 알을 손에 쥐고 무게와 감촉을 확인할 수 있어 온라인 구매보다 만족도가 높다는 후기가 많아서, 첫 묵주는 가급적 매장 구입을 권하는 분이 많습니다.
성물 구입에서 꼭 알아두셔야 할 것이 축복입니다. 성당 성물방이나 일반 매장에서 구매한 묵주, 성모상, 십자고상은 사용하기 전에 사제에게 축복을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축복은 신앙의 표징인 성물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신자들에게 영적 유익을 주도록 기도하는 예식이라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의미가 분명한 의례입니다. 본당 사무실에 사전에 연락드리고 미사 후 시간을 잡아 사제에게 부탁드리면 짧게는 5분, 길게는 10분 정도의 강복 예식으로 진행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성화 그림은 축복 대상에서 제외되고요, 반지나 팔찌 같은 액세서리류는 성물로 분류되지 않아 축복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를 때 무엇을 봐야 할지 감이 안 잡히시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기준을 적어드리면, 우선 묵주는 손에 쥐고 알을 한 알씩 굴려보았을 때 매듭이 단단하게 묶여 있는지, 줄이 잘 끊어지지 않는 소재인지를 살펴보세요. 묵주는 매일 손에 쥐고 사용하는 물건이라 한 달만 써도 약한 줄은 풀려버립니다. 나일론 줄보다는 와이어가 들어간 제품이 오래 쓰기 좋고, 알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손가락이 피로해지므로 가벼운 나무알이나 결정 알이 일상용으로는 더 편합니다. 성모상이나 십자고상은 도자기, 석고, 청동, 원목 등 재질이 다양한데 햇빛이 강한 자리에 둘 거라면 변색이 적은 청동이나 원목을 권하고,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은 깨질 위험이 있는 도자기보다 폴리스톤이나 원목이 안전합니다. 차량용 작은 십자고상이나 묵주는 흔들림에 깨지지 않는 실리콘이나 우드 재질이 활용도가 높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분들이 선물을 준비하실 때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분의 영세를 축하하거나 첫영성체, 견진성사 같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할 때 묵주나 미사보, 성경 케이스가 정성스러운 선물이 되거든요. 일반적으로 영세 선물로는 묵주가, 첫영성체에는 어린이용 묵주와 작은 십자가 목걸이, 견진성사에는 묵주반지나 견진 카드가 자주 선택됩니다. 이때 받는 분의 본당 신부님에게 축복을 받게 되니 굳이 미리 축복을 받아 보낼 필요는 없고, 케이스 안에 카드와 함께 정갈하게 포장해 전달하시면 됩니다.
보관과 관리에도 신경을 써주시면 성물의 의미가 오래 살아납니다. 묵주는 사용 후에는 전용 케이스에 넣어 가방이나 침대 머리맡에 두시고, 매일 사용한다면 알에 묻은 손기름과 먼지를 부드러운 마른 천으로 가볍게 닦아주시면 광택이 오래 유지됩니다. 성모상이나 십자고상은 직사광선과 너무 건조한 자리를 피해 거실 한쪽이나 침실 머리맡 같은 일정한 자리에 모셔두시면 좋고, 청동상은 가끔 마른 천에 식초를 살짝 묻혀 닦으면 녹이 끼는 일이 줄어듭니다. 성수병이나 성수 그릇은 깨끗한 물로 자주 씻어서 곰팡이가 끼지 않도록 관리해주시는 것이 기본입니다.
혹시 오래되어 망가지거나 더 이상 쓰지 않는 성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해하시는 분도 많은데요, 교회에는 폐 성물 처리에 대한 명확한 가르침이 없지만 일반적으로 잘게 부수거나 깨끗한 땅에 묻거나, 사순 시기에 본당 사무실에 모아 일괄 처리하는 방식이 권장됩니다. 평범한 쓰레기와 같이 버리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어 사순절이나 부활 전에 본당에 문의해 처리하는 것이 가장 깔끔합니다. 또한 너무 자주 새 성물을 사기보다는 기존의 성물을 잘 닦고 수리해서 오래 사용하는 것이 신앙의 자세에 더 가깝다는 시각이 있어서, 한 번 정성껏 고른 성물을 길게 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온라인으로 구입하실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가톨릭 정식 인증을 받지 않은 일반 쇼핑몰에서 묵주나 십자고상이 디자인 액세서리처럼 판매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제품은 형태는 비슷해도 종교 의식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본당 사제에게 축복받기 어려운 사례가 보고됩니다. 신뢰할 만한 매장은 보통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인증이나 본당 추천 표시가 사이트에 명시되어 있으니 첫 구매라면 이런 표시를 확인하시는 게 안전합니다. 해외 직구로 들여오는 베드로성당 기념 묵주나 루르드 성수처럼 특정 성지에서 만든 제품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되, 한국 본당에서 정식으로 축복을 받아 사용하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물은 많이 가질수록 신앙심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함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한 신부님 말씀처럼 성물은 기도와 묵상으로 들어가는 작은 입구일 뿐, 그 자체가 신앙의 본질은 아니거든요. 묵주 한 단을 매일 손에 쥐고 정성껏 기도하는 신자가 화려한 성물을 가득 모아두기만 하는 신자보다 영적으로 풍요로운 길에 더 가깝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시는 분이라면 묵주 하나, 십자고상 하나, 성경 한 권 정도로 시작하시고 시간이 지나면서 본당 어르신들과 이야기 나누며 자기에게 맞는 성물을 천천히 더해가시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길입니다.